그렇지만 정작 떠나기 전날은 기분이 최악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그래서 더욱 허탈하고 답답한 고통과 그 고통은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갑자기 엄습해왔다. 누구나 각자 짊어지고 가는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다지 억울하지도, 혼자서만 슬퍼할 일도 아닐텐데. 그런데도 초연한 마음을 갖기란 참 어렵구나. 그래도 한바탕 분출을 하고 나니 어느정도 다시 평정을 되찾은 것 같다. (너무 무념무상에 빠져버렸는지도.)
연휴의 시작이어선지 버스는 달팽이처럼 긴다. 전주 영화의 거리에 위치한 여관에 들어가니 시간은 벌써 열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매표소와 영화관 위치를 확인해볼 겸 잠시 나갔다가 나쵸칩 한 봉지와 캔맥주를 사들고 들어올 때 느끼는 소박한 즐거움이란ㅋ 그렇지만 번쩍이는 네온불빛과 북적이는 시내 한가운데서 잠을 청하려니 묘하면서 이상하게 쓸쓸한 느낌이 든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현장표를 구매하고 나니 첫영화까지 시간이 애매해져서 영화의 거리를 구경해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나무 라디오라는 카페 발견! 오랜 시간 줄서있느라 피곤했던 발을 달래며 커피와 토스트, 그리고 치즈케익을 먹으며 무한 행복을 느꼈다.
전주 음식은 푸짐하고 맛있다. 간식 같은 것이라도 서울에 비해서 양이나 크기가 엄청나다. 와플의 두께가 서울 와플 두께의 2배는 족히 넘는 것을 보고 주현이와 기겁할 정도였다.ㅋㅋ
온전히 영화와 함께하는 하루는 그렇게 즐겁고 '배부르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