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5.09 전주여행기(09.5.1.~09.5.3.) 1
  2. 2009.05.04 전주국제영화제의 영화 2
일상2009. 5. 9. 15:02

 많이 기다리고 기대했던 여행이었다. 언제인가부터 전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작년 이맘때쯤 전주에 놀러간 이야기를 해주던 선배언니의 말이 꿈결처럼 남아있던 탓이었을까. 또 작년 가을쯤에는 일본인 친구가 한국 도시 중에 전주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던 말에 어느샌가 '다음에 여행 가면 전주로!'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머리 한구석에 피어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전주국제영화제 일정을 알게 되자 '기회다!' 싶어 전주갈 채비를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작 떠나기 전날은 기분이 최악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그래서 더욱 허탈하고 답답한 고통과 그 고통은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갑자기 엄습해왔다. 누구나 각자 짊어지고 가는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다지 억울하지도, 혼자서만 슬퍼할 일도 아닐텐데. 그런데도 초연한 마음을 갖기란 참 어렵구나. 그래도 한바탕 분출을 하고 나니 어느정도 다시 평정을 되찾은 것 같다. (너무 무념무상에 빠져버렸는지도.)

 연휴의 시작이어선지 버스는 달팽이처럼 긴다. 전주 영화의 거리에 위치한 여관에 들어가니 시간은 벌써 열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매표소와 영화관 위치를 확인해볼 겸 잠시 나갔다가 나쵸칩 한 봉지와 캔맥주를 사들고 들어올 때 느끼는 소박한 즐거움이란ㅋ 그렇지만 번쩍이는 네온불빛과 북적이는 시내 한가운데서 잠을 청하려니 묘하면서 이상하게 쓸쓸한 느낌이 든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현장표를 구매하고 나니 첫영화까지 시간이 애매해져서 영화의 거리를 구경해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나무 라디오라는 카페 발견! 오랜 시간 줄서있느라 피곤했던 발을 달래며 커피와 토스트, 그리고 치즈케익을 먹으며 무한 행복을 느꼈다.


 
 이후의 시간은 영화 보고 밥먹고 영화 보고 간식 먹고 영화 보고 저녁 먹고의 연속이었다. 부천영화제 때도 느낀 것이지만 하루에 영화 4편 보는 일, 은근히 힘들다.>_< 4편을 넘어가서부터는 감상이며 비평이며 다 섞여버리게 되는 것 같다.ㅜㅜ (영화제에서 본 영화 평과 감상은 여기로) 
 전주 음식은 푸짐하고 맛있다. 간식 같은 것이라도 서울에 비해서 양이나 크기가 엄청나다. 와플의 두께가 서울 와플 두께의 2배는 족히 넘는 것을 보고 주현이와 기겁할 정도였다.ㅋㅋ 
(
(아;;올려놓고 보니 주현이와 내가 생선을 너무 심히 파먹은 티가 나는 것 같다;;ㅋㅋ)
온전히 영화와 함께하는 하루는 그렇게 즐겁고 '배부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Posted by beinme
영화2009. 5. 4. 20:56

소매치기
 소매치기인 카말이 훔친 지갑에서 아내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대사도 별로 없고, 영화가 역순으로 전개되는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끊임없이 생각해야한다. '누가 죽은 거지?' '저걸 왜 주는 거지?' '저 피는 어디서 난 거지?' 영화에서 맘에 들었던 것은 카말의 심리상태를 영상적으로 처리한 부분과 상반되는 요소들을 병치시키는 부분들. 아내의 사진을 본 날 저녁,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모습은 흐릿하게 잡히다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슬로모션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카말의 의심과 분노를 잘 표현한 것 같다. 기찻길 바로 옆에 살아서 자칫하면 죽을 수 있는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카말의 가족 그리고 영화속의 장례식과 카말의 아내의 뱃속에 든 생명은 삶과 죽음이 묘하게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 소매치기라는 현실적, 금전적인 차원에서 아내의 사진을 보는 순간 드러나는 사랑과 애정의 문제 또한 물질과 정신이라는 양면의 세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결말은 주현이 말대로 뭔가 오이디푸스스럽지만 전반적으로 곱씹을 만한 영화다. 

바다쪽으로, 한 뼘 더  
 기면증을 가진 여고생 원우, 그리고 그녀를 키우는 싱글맘 연희.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잠들어버리는 병 때문에 웃지도 뛰지도 못하는 원우는 원하는대로 할 수 없어서 점점 지쳐가고, 상처받고, 연희는 딸 걱정에 웃음을 잃은지 오래다. 같은 반 친구 준서와 사진가 선재가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면서 모녀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식상해지기 쉬운 성장 영화지만 기면증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있어서 참신함을 느꼈다. 또 너무 억지로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아서 좋았다. 엄마 친구의 딸에게 잠자는 숲속의 공주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북받쳐오르는 울음을 삼키는 원우의 모습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서 그래서 더 답답하고 힘든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은 오직 자기만이 지고 가는 고통이기에 외롭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데도 그가 말하는 실제적인 고통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자각에 이른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가 지구를 던진다고 해도 사람들이 받는 건 저마다 각자의 공일 것이다."라는 김연수 단편소설의 한 대목이 여기서 떠올랐다. 그렇게 평범하게 웃지도 뛰지도 못해서 나만이 삶을 온전히 충만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렇지만 이런 아픔을 겪으면서 원우는 성장한다. 낡은 이를 새 이가 대체하듯이. 맑고, 잔잔한 여운이 남는 영화다.

 동베이, 동베이
 
하얼빈에 사는 19세 소녀 쉬에는 술집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날 술집에서의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아이를 낳길 원하지만 남자와 술집 주인 아주머니의 권유로 낙태를 한다. 쉬에가 베이징으로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스토리가 단순하지만 영화 속의 어두운 색감과 담담하게 쉬에를 따라가는 카메라를 통해 쉬에의 어둡고 불투명한 삶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 쉬에가 탄 기차 뒤로 길게 늘어지는 기찻길을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저우 펑 감독은 원래 이 장면에 음악을 삽입했지만 쉬에의 감정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음악을 뺐다고 한다.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길게 늘어지는 기찻길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차의 덜컹거림에서 쉬에의 막막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삼부작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하니, 쉬에의 베이징에서의 생활을 찍은 영화를 기대해봐야겠다.

딥엔드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누군지 잘 모르겠지만;ㅋ) 회고전으로 나온 작품이다. 15세 소년 마이크가 공중목욕탕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거기서 일하는 여성동료 수잔에 대한 성적 호기심과 탐닉을 겪으면서 이해불가한 정신상태와 집착을 보여주다가 결국 파국에 이르는 줄거리다. 수영장 속에서 수잔과 나체로 수영하는 것을 상상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솔직히 마이크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만큼 미련하고, 수잔에게 집착한다. 자기는 수잔과 사랑에 빠져있다는 혼자만의 착각 속에 살면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데까지 치달음으로써 청소년의 혼란스럽고 와일드(?)한 내면 상태를 보여주려고 감독이 의도한 것이었을까. 감독의 독특한 장면 구성 방식도 흥미로웠다.
이 영화의 교훈은 극단으로 가면 망할지니라(?)
Posted by bein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