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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5 Half Nelson(하프 넬슨)- 삶에 대한 변증법적 고찰
영화2012. 12. 15. 00:52

 


하프 넬슨 (2012)

Half Nelson 
7.9
감독
라이언 플렉
출연
라이언 고슬링, 샤리카 엡스, 안소니 마키, 모니크 가브리엘라 커넨, 제프 리마
정보
드라마 | 미국 | 106 분 | 2012-11-22
글쓴이 평점  

 브루클린의 백인교사와 흑인 학생. 이 두 가지만 놓고 봤을 때는 '파인딩 포레스터'와 같은 폭풍감동 영화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교사도 학생도 각자의 세계 속에서 매일 분투할 뿐이다. 이상주의자인 중학교 교사 댄은 틀에 박힌 역사 수업 대신 뉴스클립과 토론 등으로 학생들의 역사에 대한 흥미를 일깨우고자 한다. 방과후에는 학생 농구팀을 꾸려서 감독할만큼 열정적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는 마약을 피운다. 자신을 떠나간 여자친구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주는 무력감은 마약을 통해서만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그의 학생 드레이는 부모님은 이혼했고 엄마와 살고 있지만 생계를 짊어진 엄마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오빠는 마약 장사를 하다가 잡혀서 복역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빠와 함께 일한 동네 아저씨 프랭크는 드레이에게 함께 일할 생각이 없냐고 접근한다.

 

 드레이는 학교 화장실에서 마약을 피우는 댄과 우연히 마주치고 거기서부터 그 둘의 조심스러운 우정이 시작된다. 알게 모르게 드레이는 댄의 상태를 늘 주시하고, 댄은 프랭크가 드레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세력의 흐름이 있는 것일까. 댄은 점점더 마약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드레이는 프랭크를 따라 마약 배달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어느날 밤. 스승과 제자가 아닌 약쟁이와 약장수의 관계로 만나게 된다. 그 장면은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씁쓸한 현실에 대한 확인이자 자기인식에 가깝다.

 

 댄은 늘 수업에서 변증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늘 서로 대항하는 두 개의 힘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흑이거나 백일 수 없고 둘다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합을 향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댄과 드레이의 삶에도 적용된다. 댄의 삶의 한 쪽 끝(정)에는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이상과 열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 반대편(반)에는 외로움, 무력감, 그리고 마약이 있다. 드레이의 삶의 한 쪽에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안으로서의 교육이, 그 반대편에는 손쉬운 돈벌이로서의 약장사라는 유혹이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이 합을 찾아가는 과정은 약쟁이와 약장수라는 반세력의 극단을 경험하고 받아들이고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극적 만남의 다음 날 오후, 학교에 출근하지 않은 댄을 드레이가 찾아간다. 이 둘의 삶의 합이란 다름 아닌 서로의 존재인 것이다. 서로 대항하는 거대한 힘에 대해 얘기하다가 합이 서로의 존재로 귀결된다니 김샐 수 있다. 그러나 드레이가 댄에게 건네는 사탕에, 그리고 댄이 드레이에게 건네는 썰렁한 농담에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그것은 미약하지만 단단하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출발점이다.

Posted by bein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