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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6 The Hurt Locker(허트 로커)-전쟁 속에서 길을 잃다.
영화2010. 5. 26. 01:39

허트 로커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2008 / 미국)
출연 제레미 레너, 안소니 마키, 브라이언 개러티, 가이 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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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ush of battle is often a potent and lethal addiction, for war is a drug.(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아서 종종 강렬하고도 치명적으로 중독된다.)" -Chris Hedges-

 
 전쟁에서 인간성의 모든 부분은 낱낱이, 철저히 시험 당한다. 이라크의 폭발물 제거반에 속해 있는 제임스, 샌본, 그리고 엘드리지도 그렇다. 마음씨 착한 엘드리지는 옛 팀장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죄책감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하는 매일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죽은 동료의 피가 묻은 총알을 자신의 침으로 닦아내면서 그리고 (명령이 아닌) 자신의 판단에 따라 처음으로 적군을 죽였을 때 그는 묘하면서도 씁쓸한 슬픔을 느낀다. 그의 부조리에 대한 슬픔은 자신에게 조언을 주던 군의관이 한 순간의 폭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 극에 달한다. "Let's get out of this f**kin desert."이라는 말만 남기고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우직한 성격의 샌본은 매 미션마다 목숨을 걸고 임하는 제임스가 신기하기만 하다. 그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여자친구와  가정을 이루고픈 꿈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안긴다. 그리고 그는 이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한다. 나는 폭발물 제거 팀장이 될만한 자질을 갖추었는가.(이 질문을 그는 제임스에게도 던지기도 한다.)

 오직 제임스만은 예외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는 헤드셋을 끼우라는 엘드리지에게 유유히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여유를 보여준다. 자기를 죽일 뻔 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 건 재밌는 일 아니냐며 자신이 해체한 폭발물 부속품들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좀 무섭기까지 하다. 폭발물을 해체할 때 느껴지는 스릴과 아드레날린을 먹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제임스 또한 전쟁의 부조리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라크에 있는 동안 알게 된 소년의 배 속에 폭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또는 엘드리지가 부상 당한 뒤 샤워기를 틀어넣고 군복에 묻은 피를 씻어낼 때 그의 눈빛은 흔들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투는 마약과도 같아서 그는 그것을 끊을 수 없다. 일상으로 돌아와 시리얼을 고르는 아주 일상적인 행위에서조차도 난감해하는 장면은 그가 일상에 계속 머무를 수 없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리고 곧, 그는 다시 전쟁터로 나선다. 빠져나오고 싶지만 빠져나올 수 없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의 고통과 그것이 주는 묘한 희열. 우리는 이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덧)
-단순히 '전쟁은 끔찍해' 식으로 전쟁을 조명하지 않고 전쟁 속에서 사람이 겪는 상반된 감정과 딜레마를 다루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인 듯.
-예고편은 속시원한 액션물처럼 나왔지만ㅠㅠ 보는 내내 속시원하다기보다는 불편한 긴장감을 느낀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까지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라면 안 보는 것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영화. 


Posted by bein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