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09. 3. 21. 16:36

"우와!!!" 구글 메인페이지가 뜨자마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에릭 칼(Eric Carle)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먼 기억 속 유년시절 추억의 소중한 조각이기에 반갑기 그지 없었다. 에릭 칼이 쓰고 일러스트레이트한 책 'The very hungry caterpillar' 출판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구글로고를 바꾼 것이다. 책에서도 실제로 애벌레가 과일을 먹어들어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과일 그림에다가 구멍을 뚫어놨었는데 이 로고에도 그대로 구멍을 표현한 것을 보니 귀엽다!>_<

 이 책이 아동책에서 거의 고전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30초마다 세계에서 한 권씩 팔리고 이미 47개국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작은 애벌레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과일과 풀을 먹고 번데기에서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단순하지만 기분 좋은 스토리, 자연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는 화려한 색깔, 그리고 섬세한 듯 투박한 듯한 그림표현이 이 책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Posted by beinme
영화2009. 3. 17. 23:27
 (스포일러 있습니다. >_<) 숨막히도록 아름답고 광활한 몬태나의 자연을 배경으로 러드로우 가족의 이야기가 가족과 함께 했던 인디언 원스탭(one-stab)의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사회통념과 원칙에 충실한 첫째 알프레드, 자유분방하고 반항적 기질이 있는 둘째 트리스탄, 그리고 겁 많고 순진한 막내 새뮤얼의 운명은 새뮤얼의 약혼녀 수잔나가 등장하면서 엇갈리기 시작한다. 알프레드와 트리스탄 모두 그녀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감히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에 세 형제는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다. 트리스탄은 새뮤얼을 열심히 보호하지만 영웅주의에 빠져 적군의 진영으로 나아간 새뮤얼은 결국 적군의 총을 맞고 죽는다. 알프레드는 전쟁에서 돌아와 수잔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바다로 향했던 트리스탄이 돌아온다. 트리스탄과 수잔나는 사랑에 빠지고, 비통한 알프레드는 도시로 떠난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다시금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목소리를 듣고 기약없이 여행을 떠난다. 수잔나는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몇년 후에 "우리가 함께한 모든 것은 사라졌소. 다른 사람과 결혼하오."라는 트리스탄의 편지가 날아온다. 수잔나는 절망에 빠지고, 트리스탄과 알프레드의 아버지 러드로우 대령이 중풍에 걸리면서 러드로우 일가는 점점 황폐해져만 가는데...
 
 줄거리를 반 정도만 썼는데도 이렇게 길구나; (그 다음이 궁금하다면 dvd 대여 고고)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러드로우 가족에 대한 것이지만 초점은 둘째 트리스탄에게 있다. 트리스탄은 어린 시절 곰을 찾아 나섰다가 곰에게 할퀴어 상처를 입지만 동시에 곰의 손가락을 자르게 된다. 원스텝이 인디언 이야기에 따르면 동물과 피를 나눈 인간은 그 동물과 하나가 된다고 한다. 이때부터 트리스탄은 곰과 하나가 되어 인간의 세계가 아닌 자연의 세계에 속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 내면의 곰의 목소리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수잔나와 불타는 사랑에 빠졌다가도 목소리에 따라 미련없이 떠나기도 한다. 정말 단순하게 본다면, 트리스탄은 천하의 못된 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혼할 여자를 두고 갑작스레 떠나고 나서 띡- 이별통보를 하다니!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가 인간세계의 사회 문화적 규범의 잣대로 그를 바라보기 때문에 내려지는 결론이다. 한 세계의 기준으로 다른 세계에 평가의 잣대를 대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올바른 평가라고 볼 수도 없다. 트리스탄이 사는 세계는 인간세계의 규범에서는 벗어난 세계인 것이다.(이에 대해 남성성, 혹은 마초이즘에 대한 옹호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그것은 또다른 문제에 해당한다. 나는 자연세계의 기준은 인간세계의 기준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지 그것이 곧 남성성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이것은 의미부여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리스탄은 자기가 속한 세계와 속하지 않은 세계를 화해시키고 그 조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전쟁터에서 한시도 새뮤얼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보호하다가 그가 죽자 인디언의 방식으로 복수를 하고, 수잔나와 사랑할 때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한다. 수잔나가 알프레드와 결혼한 후에도 트리스탄이 그녀에게 준 보호팔찌를 간직하라고 말한다. 이자벨 2세와 결혼하면서 아들도 낳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간다.

 그러나 원스탭의 말처럼 그는 돌과 같아서, 그와 가까이 오는 자들은 부서진다. 트리스탄은 비극을 경험하면서 죽을 때까지 두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분명히 듣는 자들이 있다. 그 목소리를 따르는 사람은 미치광이가 되거나 전설이 된다." 이렇게 트리스탄의 삶은 하나의 전설이 되어 전해져 내려온다.

 이 영화에서 때로는 가슴벅차게, 때로는 잔잔하게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 내재되어 있는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 아닐까. 굳이 자연세계라는 거창한 것을 들지 않더라도, 사회의 통념이나 사회문화적인 규범에 답답함을 느끼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면 '미치광이'로 취급되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이 트리스탄에게 투사되는 것이다. 비극적 사건이 많은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껴안고 묵묵히 나아가는 트리스탄의 모습에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조금은 더,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에 대해 용기를 가지게 된다.

전설의 삶을 위하여.
 

 
Posted by bein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