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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1 예술의 전당 Karsh전(Faces of our Time)
일상2009. 3. 11. 21:38


 인물사진의 거장인 유섭 카쉬(Yousuf Karsh)의 사진 전시회에 다녀왔다. 사실, 그전까지 카쉬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사진을 좋아하면서도 인물사진이 제일 찍기 어렵다고 평소에 느끼던 중에 카쉬전은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카쉬전을 보면서 느낀 것은 첫째, 인물사진을 찍는 그만의 스타일이 빛을 다루는 솜씨와 어우러져서 강렬한 사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흑백필름에, 배경은 주로 검은색으로 하고, 잉여의 공간없이 인물의 얼굴이나 몸으로 프레임을 꽉 채움으로써 인물을 최대한 부각시킨다. 자연히 보는 이는 인물을 찬찬히, 정말로 찬찬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일상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오랫동안 가만히 바라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하면 오히려 변태 취급 당하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내가 이제껏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 주의를 집중하게 되어서 신선하고, 충만했다.) 피델카스트로의 혁명의지만큼이나 고집스럽게 뻣뻣한 턱수염, 슈바이처 박사의 이마의 굴곡진 주름살. 이런 기법과 빛이 함께 어우러지니 집중의 효과는 더욱 배가되었다. 빛이 부드럽게 얼굴을 흐르면서 드러나는 얼굴의 곡선과 표정, 눈빛. 카쉬는 이런 방법으로 인물의 에센스를 응축시켜서 무게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헤밍웨이의 불안한듯 수줍은 듯한 묵묵한 표정, 오드리 헵번의 우아함과 그 이면의 연약함, 카쉬가 처칠의 담배를 빼어든 순간 느껴지는 처칠의 단단함, 90세가 넘었는데도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을 가진 버나드 쇼의 장난기, 아인슈타인의 인류에 대한 고뇌와 고독. 세기의 인물들이 사진을 통해 몇십년을 뚫고 나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분위기에 때로는 압도당하기도 숙연해지기도 연민을 느끼기기도 또는 생명력을 느끼면서 미소를 짓게 되었다.

 두번째 느낀 것은 카쉬의 교감과 순간포착 능력이다. 그는 찍어놓은 사진마다 찍을 당시의 상황과 일화를 소개하였는데 그것을 읽으면서 사진 찍을 당시의 상황을 머리 속에서 재구성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카쉬가 아인슈타인과 핵개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결국 카쉬는 인류는 미래에 어디에 기대야하느냐고 묻자 아인슈타인은 담담히 "우리 자신들에게
"라고 말했다. 그 순간을 카쉬는 놓치지 않았다. 처칠을 찍을 당시의 일화는 유명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쉬가 처칠이 피우던 담배를 빼앗는 순간 처칠은 으르렁거렸고 그 순간에 그 유명한 사진이 태어났다. 이 사진은 당시 이차세계대전에서 영국의 결의를 나타내는 사진으로 세계에 퍼져나갔다. 여러 일화들을 읽다보면 카쉬는 자신의 인물들과 편안히 얘기하면서도 그들의 내면이 외면에 우러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

 전시관을 나오면서 갑자기 렌즈 뒤의 사나이 유섭 카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졌다. 그가 찍은 인물사진과 찍을 당시에 적은 에피소드와 그 자신의 감정들을 생각해볼 때 카쉬는 사진가이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졌던 사람이었을 것 같다. 사진 찍는 사람은 많아지지만 찍는 대상에 대한 관심보다는 기기와 찍는 기술이 더 중요시되는 요즘, 사진을 찍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에 잠겨본다.

Posted by bein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