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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009. 5. 4. 20:56

소매치기
 소매치기인 카말이 훔친 지갑에서 아내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대사도 별로 없고, 영화가 역순으로 전개되는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끊임없이 생각해야한다. '누가 죽은 거지?' '저걸 왜 주는 거지?' '저 피는 어디서 난 거지?' 영화에서 맘에 들었던 것은 카말의 심리상태를 영상적으로 처리한 부분과 상반되는 요소들을 병치시키는 부분들. 아내의 사진을 본 날 저녁,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모습은 흐릿하게 잡히다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슬로모션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카말의 의심과 분노를 잘 표현한 것 같다. 기찻길 바로 옆에 살아서 자칫하면 죽을 수 있는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카말의 가족 그리고 영화속의 장례식과 카말의 아내의 뱃속에 든 생명은 삶과 죽음이 묘하게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 소매치기라는 현실적, 금전적인 차원에서 아내의 사진을 보는 순간 드러나는 사랑과 애정의 문제 또한 물질과 정신이라는 양면의 세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결말은 주현이 말대로 뭔가 오이디푸스스럽지만 전반적으로 곱씹을 만한 영화다. 

바다쪽으로, 한 뼘 더  
 기면증을 가진 여고생 원우, 그리고 그녀를 키우는 싱글맘 연희.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잠들어버리는 병 때문에 웃지도 뛰지도 못하는 원우는 원하는대로 할 수 없어서 점점 지쳐가고, 상처받고, 연희는 딸 걱정에 웃음을 잃은지 오래다. 같은 반 친구 준서와 사진가 선재가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면서 모녀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식상해지기 쉬운 성장 영화지만 기면증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있어서 참신함을 느꼈다. 또 너무 억지로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아서 좋았다. 엄마 친구의 딸에게 잠자는 숲속의 공주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북받쳐오르는 울음을 삼키는 원우의 모습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서 그래서 더 답답하고 힘든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은 오직 자기만이 지고 가는 고통이기에 외롭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데도 그가 말하는 실제적인 고통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자각에 이른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가 지구를 던진다고 해도 사람들이 받는 건 저마다 각자의 공일 것이다."라는 김연수 단편소설의 한 대목이 여기서 떠올랐다. 그렇게 평범하게 웃지도 뛰지도 못해서 나만이 삶을 온전히 충만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렇지만 이런 아픔을 겪으면서 원우는 성장한다. 낡은 이를 새 이가 대체하듯이. 맑고, 잔잔한 여운이 남는 영화다.

 동베이, 동베이
 
하얼빈에 사는 19세 소녀 쉬에는 술집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날 술집에서의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아이를 낳길 원하지만 남자와 술집 주인 아주머니의 권유로 낙태를 한다. 쉬에가 베이징으로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스토리가 단순하지만 영화 속의 어두운 색감과 담담하게 쉬에를 따라가는 카메라를 통해 쉬에의 어둡고 불투명한 삶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 쉬에가 탄 기차 뒤로 길게 늘어지는 기찻길을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저우 펑 감독은 원래 이 장면에 음악을 삽입했지만 쉬에의 감정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음악을 뺐다고 한다.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길게 늘어지는 기찻길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차의 덜컹거림에서 쉬에의 막막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삼부작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하니, 쉬에의 베이징에서의 생활을 찍은 영화를 기대해봐야겠다.

딥엔드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누군지 잘 모르겠지만;ㅋ) 회고전으로 나온 작품이다. 15세 소년 마이크가 공중목욕탕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거기서 일하는 여성동료 수잔에 대한 성적 호기심과 탐닉을 겪으면서 이해불가한 정신상태와 집착을 보여주다가 결국 파국에 이르는 줄거리다. 수영장 속에서 수잔과 나체로 수영하는 것을 상상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솔직히 마이크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만큼 미련하고, 수잔에게 집착한다. 자기는 수잔과 사랑에 빠져있다는 혼자만의 착각 속에 살면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데까지 치달음으로써 청소년의 혼란스럽고 와일드(?)한 내면 상태를 보여주려고 감독이 의도한 것이었을까. 감독의 독특한 장면 구성 방식도 흥미로웠다.
이 영화의 교훈은 극단으로 가면 망할지니라(?)
Posted by beinme